강홍구 展

 

신안 바다 - 뻘, 모래, 바람

 

 

 

원앤제이갤러리

 

2022. 6. 16(목) ▶ 2022. 7. 24(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31-14 | T.02-745-1644

 

http://oneandj.com

 

 

임자도 1_피그먼트 프린트_40x50cm_Edition of 5_2017

 

 

신안 바다 Deja vu via Jamais vu

1. 72곳의 유인도, 무인도 953곳 모두 합쳐 1025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전라남도 신안군은 2개의 읍과 12개의 면이 있다. 최남단 가거도에서 최북단 어의도 까지 남북 거리가 약 200Km에 이르며 서울시의 22배나 되는 넓은 바다에 흩어져 있는 섬으로 되어 있어 신안군은 예전부터 우리나라의 변방이었고 유배지였다.

2. 신안군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의 중심은 가거도, 흑산도, 홍도, 천사대교, 증도... 홍어, 소금, 염전, 뻘, 김 ...등의 관광지와 해산물일 것이다. 이 전시는 이러한 이미지들에 대한 일종의 다시 보기이다. 방송과, 다큐멘터리와 영화들이 놓치거나 빠뜨린 신안군에 대한 삶과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자 분석의 시도이다.
여름 뙤약볕 속에서 토판 염전에서 긁어낸 소금의 짠맛과, 한밤중 바다에서 갓 건져올린 젖새우의 몸에서 푸르게 빛나는 인광은 과거의 기억이 되어간다. 섬들 사이에 다리가 놓이고, 배들이 사라지고, 사람이 줄고, 태양광 발전소와 풍력 발전기가 땅과 바다를 점령하는 등 신안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변방으로서의 신안은 육지, 혹은 중심의 시각에서 언제나 타자화 된다. 그 타자화는 신안군에서 사회적 물의가 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일종의 범죄로 가득 찬 섬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사실은 서울, 부산 같은 대도시와 그 주변에서 훨씬 더 많은 끔찍한 범죄들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전체적인 범죄율이나 강력 사건 발생률 따위는 언급되지도 않는다.
그런 타자화의 경험, 일종의 무시하는 시선들은 섬 사람들, 섬 태생인 사람들에게 섬 놈이 뭐 그렇지 등의 자학적 태도를 낳기도 한다.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저평가해서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무시를 당하지 않기 위해 허세와 과장된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일종의 방어기제이며 공격적이 아니다. 호히려 무책임한 비하와 공격성은 변방, 섬, 섬사람들을 낮춰보거나 타자화하는 중심부, 특히 언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3. 2005년 무렵 오랜만에 고향인 신안 섬들을 방문했을 때 어려서부터 너무나 잘 알던 모든 것들이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게 보였다. 익숙한 낯설음 혹은 기시감을 지난 미시감(deja vu via jamais vu)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느낌은 내 기억과 눈 앞의 현실 사이에 엄청난 틈이 있음을 뜻했다.
그 틈새가 무엇인지를 찾고 기록하는 것이 이후 17년 가까이 이어진 신안군에 대한 작업의 주제가 되었다. 내가 신안군 출신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내부자의 시선과 오랫동안 신안군을 떠나 있어서 갖게 된 외부자의 시선이 겹치는 지점에서 바라본, 변모한 신안과 아직 변하지 않은 풍경들 사이에 과연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또한 늘 변방 취급을 받는 소외의 대상인 섬과 바다가 가진 아름다움에 대한 개인적인 장소 애착의 표현이기도 했다.

 

 

우이도 1_피그먼트 프린트_100x240cm_Edition of 5_2019

 

 

4. 내 경우 애착감에 바탕을 둔 고향 바다의 기억은 색깔의 변화다. 어쩌다 보는 바다는 늘 같아 보이지만 사실 바다는 계절, 지역, 날씨에 따라 색깔을 바꾼다. 대보름에 태운 논밭 둑 삘기 풀의 검게 탄 자국 사이로 삐죽삐죽 연초록 새잎이 나고, 제비꽃과 민들레가 따스해진 바람 속에 피면 바다는 색을 바꾸기 시작한다. 겨울 동안 북풍에 뒤집힌 채 뻘물이 밴 바다는 죽은 상어 배때기 빛깔의 회색이다.
그런 바다가 북풍이 자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흐릿하게 푸른기가 돌다가, 제비꽃이 피면 부드러운 연두색이 섞이기 시작한다. 연두빛 바다가 완전히 겨울 색을 벗어나 초록에 가까운 푸른 연두로 바뀌는 것은 유채꽃이 필 무렵이다. 장다리꽃, 유채꽃, 무꽃이 피고 보리들이 통통하게 알을 배기 시작할 때 바람 없는 봄 바다는 연초록 비단 같다.
찔레꽃이 희게 피고 밭둑 언덕에 삘기가 피었다 쇠어 하얗게 흔들리기 시작하면 바다는 다시 색을 바꾼다. 여름 바다가 되는 것이다. 연두색을 벗은 바다는 푸른 방어 등처럼 싱싱하고 차갑다. 살이 오를 대로 오른 숭어들이 알을 낳기 위해 떼 지어 돌아다니는 것도 그 때였다. 보리가 익을 무렵 숭어 떼가 있는 곳은 거품이 일어 금방 알 수 있다.
구월이 지나 시월이 되면 바다는 또 색을 바꾼다. 검푸른 여름 빛깔에서 봄 바다보다는 푸르고 여름 바다 보다는 옅은 녹색으로 변한다. 물속 깊은 어는 곳엔가 새로운 색깔이 솟아 나오는 큰 물감 통이 있는 것처럼. 그러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서 보는 가을 바다는 조금씩 시들어 가는 칡잎과 절벽 위에 줄지어 선 감탕나무 잎사귀 사이로 깨진 사금파리처럼 반짝인다. 겨울이 멀지 않은 것이다.
물론 바다에 관해 안다고 그 변화들을 사진이나 다른 매체로 담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저 그 근처를 카메라를 들고 얼쩡거릴 뿐이다.

5. 모든 기억이란 근본적으로 부정확하다. 그리고 현실은 늘 변한다. 그 변한 현실과 부정확한 기억 사이의 불일치는 구체적인 공간과 장소들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길, 골목, 집들, 논밭의 위치와 모양, 뻘밭과 나무들은 기억과 달랐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시험 삼아 신안의 몇몇 섬들을 카메라를 메고 돌아다니며 그 벌어진 틈들을 확인한 다음에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멍텅구리 배, 새우젓, 인신매매 따위로 악명과 유명세를 같이 누렸던 임자도 전장포는 퇴락해 있었다. 동력이 없어 움직이지 못하는 중선이라고 불렀던 멍텅구리배는 조업이 금지되어 완전히 사라지고 새우어장 또한 시들해져서 모래벌에는 낡은 집과 부서진 폐선이 눈에 들어왔다. 선착장에 서 있는 새우 모양의 조각과 곽재구의 전장포 아리랑 시비는 촌스럽게 튀었고, 모래밭에는 죽은 개 두개골이 허옇게 드러나 있었다.
대광리의 해수욕장은 전장포와는 달리 어중간한 관광지의 모습으로 변했고, 튤립 축제가 열리는 탓에 들판에 서 있는 네덜란드 풍 풍차는 기이했다. 괘길리 주위의 대파밭에서 돌아가며 물을 뿌리는 스프링 쿨러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고 많은 것이 바뀌었나를 보여 주었다.

6. 비교적 잘 알려진 유네스코가 지정한 슬로우 시티 증도의 태평염전, 엘도라도 리조트, 짱뚱이 다리를 건너서 만난 우전리 해수욕장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안에서 증도에 이르는 다리가 완성되어 차들이 밀렸다. 우전리 해수욕장에는 죽어가는 종려나무와 남태평양 풍의 방갈로는 노인들이 주로 남아 있는 마을의 돌담과 부딪혔다. 이런 점들은 지도와 그 부속 도서인 어의도도 다르지 않았다. 지도에는 중소 규모의 조선소가 들어서고, 어의도에는 새우 양식장이 생기고, 산과 들의 식생도 바뀌고 있었다. 소나무들은 재선충 탓에 죽어 넘어지고, 난대식물이 울창하게 우거져 어떤 곳은 지나갈 수조차 없었다.

7. 신안군은 크게 중북부의 임자, 지도, 증도, 자은, 팔금, 암태, 안좌, 신의, 하의, 장산, 비금, 도초면과 남쪽의 흑산면으로 나눌 수 있다. 도초면에 속하는 우이도 부터는 바위가 많고 뻘이 거의 없으며 수심이 깊어져서 식생과 풍광이 다르고 삶의 모습도 다르다. 중북부에 흔한 넓은 논밭, 간척지, 염전 대신에 어업, 양식, 수산물 채취업이 주업이 된다.
우이도, 홍도, 가거도, 만재도 등의 섬은 신안군민이라도 해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가보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오래전에 홍도를 가본 적은 있지만 다른 섬들은 작업을 하기 위해 간 것이 처음이었다. 가거도의 경우에는 거의 아열대 숲이 밀림을 이루고 있었다. 항리에서 산길로 등대와 대풍리 쪽으로 가다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고, 인적 없는 숲이 무섭기 조차 했다. 물론 지금은 등대까지 가는 길이 새로 닦여 일부러 가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압해 1_피그먼트 프린트_55x300cm_Edition of 5_2019

 

 

8. 신안군에 대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이 대략 2005년 무렵이다. 물론 생각날 때만 찾아가서 촬영했기 때문에 아주 열심히 찍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17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다 보니 사진의 양도 많아졌고, 신안군도 많이 변했다. 여객선에서 내려 종선을 타야 했던 만재도는 선착장에 직접 여객선이 접안하게 되면서 목포에서 출발하는 직항로가 생겼다. 전에는 가거도를 거쳐가야 해서 가장 먼 곳이었는 데 훨씬 가까워졌다.
물론 그뿐만이 아니다. 가거도에는 엄청난 넓이의 방파제가 아직도 건설 중이고, 천사대교, 임자대교등이 개통퇴어 육지와 직접 연결되는 섬들이 많아졌다. 곳곳에 태양광 발전소와 풍력 발전소가 곳곳에 생기고, 연륙 된 곳은 바닷가 땅값이 오르고 관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 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밖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전에 찍어 두었던 경관이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곳도 상당수이다.

9. 내가 마주친 진짜 문제는 신안을 어떻게 볼 것인가, 사진 찍을까의 문제였다. 앞에 말했듯이 전체적인 기조는 익숙한 낯설음이나 기시감을 지난 미시감(deja vu via jamais vu)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으로 무슨 말을 하겠다는 것일까? 지금도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보고 보여줄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희미한 방향은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오기 시작 했다.
사진들을 찍어 놓고 보니 풍경 사진들은 대개 구체적인 묘사 안에 추상성이 늘 들어 있었다. 예를 들면 홍도에서 찍은 어느 바위 여는 세부 묘사 가 잘 된 전형적인 대형 풍경 사진이지만 명백히 추상적으로 보였다. 구성 방식이나 색채가 단순하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사진에 내재 된 어떤 것이었다.
롤랑 바르트 말처럼 이는 사진의 노에마이며, 창유리와 풍경, 선과 악, 욕망과 그 대상이 그렇듯 둘의 겹쳐짐이기 때문에 깨부수지 않으면 그것을 분리 시킬 수 없다. 즉 구상적 디테일과 결합된 추상성은 사진 찍히는 대상 혹은 사진의 본질인 것이다.

 

 

뻘밭, 기점도_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와 드로잉 콜라주_140x285cm_2022

 

 

10. 카메라를 들고 사진 작업을 해오면서 대상이 가진 어떤 본질적인 것, 묘사 등은 항상 관심 사항 밖이었다. 내 관심은 그 대상들이 가진 사회적, 정치적 의미 혹은 기호적 특성이었다. 그것들이 가진 존재감, 사물성은 부수적인 것들이었다.
하지만 신안 사진들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 장면과 대상들이 가진 사물로서의 특성들과 풍경에 잠재된 공기와 온도와 습도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다. 퇴행인지 깨달음인지 단순히 나이 먹은 것인지 알 수 없다. 혹은 찍은 뒤 전시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 천천히 드러나는 비밀 문자처럼 나타난 변화일 수도 있겠다.

11 . 나를 힘들게 한 다른 문제는 사진들을 어떻게 분류하고 모아 전시할 것인가였다. 찍은 사진들을 모아서 재구성하고 골라내니 몇 천 장이 되었다. 이 사진들을 다시 고르니 천장에 가까워졌다. 맨 먼저 한 분류는 자연 중심의 풍경들,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일, 해변에서 마주치게 되는 새와 물고기, 동물들의 주검과 해양 쓰레기들이었다. 풍경들은 당연히 바다와 뻘, 모래, 바위가 중심이 되고 마을과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는 일들은 뭍과 해변이 배경이었다. 바닷가의 동물 사체와 쓰레기는 그런 것들이 많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처음에는 작업의 대상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로 그런 사진들은 점점 들어갔고 하나의 파트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에는 기시감과 미시감이 뒤섞여 중층적인 텍스트를 이루었다.

작업 기간이 길었던 만큼 사진과 사진을 기반으로한 페인팅과 드로잉 이미지들이 너무 많아져 한번의 전시로 도저히 보여줄 수가 없어서 작품들을 크게 2부로 나누었다. 1부는 신안의 풍경이 중심이며, 앞서 말한 해양 생물들의 삶과 죽음도 포함된다. 2부는 마을, 사람, 일 등 삶의 모습이 중심이다. 물론 1부와 2부는 근본적으로 분리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당수의 작업들이 양쪽 모두에 걸쳐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러니까 1부 전시의 부제인 뻘, 모래, 바람이 축이 되는 신안군에 대한 일종의 전체적인 안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3부는 동영상이다. 일종의 물멍 동영상이란 부를 수 있는 이 작업들은 여러 곳의 바닷가에서 찍은 장면들이다. 쓰레기가 밀려 오는 장면, 안개 낀 바다, 모래밭을 덮쳐오는 파도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은 아주 개인적인 작업이어서 바다가 보고 싶을 때 대신 보기 위해서 찍은 것이기도 하다.

 

강홍구

 

 

신안 전도_천 위에 아크릴_260x280cm_2022

 

 

 

 

 
 

 
 

* 전시메일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은 작가와 필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

vol.20220616-강홍구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