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정 초대展

 

형과 색의 반영 (反影)

 

소류지의 봄_70x35cm

 

 

 

2020. 8. 18(화) ▶ 2020. 9. 17(목)

경상북도 영천시 향군로 29 | T.054-333-6555

 

www.갤러리청애.kr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_80x40cm

 

 

긴 장마와 무더운 날씨에 여러분의 건강과 정서는 안녕하신지요?

올해는 “코로나19”까지 더해져 참 힘든 한해입니다. 그렇지만 변치않고 피어난 붉은 배롱나무 꽃들과 갖가지 색깔들로 피어난 백일홍, 초록의 싱싱함으로 흔들리는 벼들, 주변의 나무들과 꽃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그들만의 생명력과 여전함으로 우리의 가슴까지 적셔줍니다. 이런 식물들처럼 여러분의 마음을 다독여줄 이경정 작가의 작품으로 8월의 전시를 준비하였습니다. 웃음지으며 손짓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인 듯, 봄의 설레임을 담아낸 작품을 감상하시면서 “코로나19”에게 빼앗겨 버린 봄의 설렘을 조금이나마 다시 찾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2_150x75cm

 

 

피안의 이상향, 그 명징한 세계로의 초대

 

작가 이경정의 작업은 안온한 서정이 물씬 묻어나는 전원의 풍경으로부터 비롯된다. 그것은 일상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평범한 풍경이다. 싱그러운 생명의 기운들을 물씬 전해주는 밝고 화사한 작가의 풍경은 마치 연둣빛의 세례를 받은 듯 맑고 고요하다. 화면 전체의 기조를 이루는 연두색은 바로 작가의 정서와 감성을 대변하는 것이라 해석된다. 작가는 특정한 공간을 설명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현장의 번잡스러움도 취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과 방법에 의하여 수렴되고 표현된 자연은 개괄과 선택의 과정을 거쳐 욱욱한 생명의 기운들이 충만한 일종의 위로와 안식을 주는 피안의 풍경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인적조차 찾을 수 없고 바람조차 살랑거리지 않는 절대정적의 고요와 세속의 온갖 것들을 씻어낸 듯 한 때 묻지 않은 청정한 맑음은 그것이 비록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미 작가의 세례를 거쳐 피안의 이상향으로 제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작가의 관심이 자연이라는 대상에 대한 묘사나 재현 등의 현상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생명의 기운과 근본적인 것에 주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대상을 육안에 의한 관찰이 아닌 일종의 심안(心眼), 즉 관조적 시각에 의한 접근에서 비롯되는 가치이다.

잔잔한 호수, 혹은 여울을 두고 건너편에 자리하는 자연의 모습은 전형적인 이상향의 암시로 읽혀진다. 물은 대체로 차안(此岸)과 피안(彼岸), 즉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며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 등의 상대적인 가치를 구분하는 은유이자 조형적 장치로 종종 차용된다. 작가가 호수 건너편에 설정한 맑고 고요한 자연의 풍경은 바로 작가의 정서와 감성의 구체적인 발현일 것이다. 실재 자연은 수많은 변화를 내재한 번잡한 양태로 존재하게 마련이지만, 작가는 색채와 형상의 표현을 최대한 억제하여 몇 가지 특징적인 요소를 통해 수렴해 낸다. 그것은 마치 동양의 산수화에서 자연을 관찰하는 도영(倒影)이라는 방법과 매우 흡사함은 매우 흥미롭다. 도영은 자연을 육안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비춘 모양을 살펴 자연의 형상을 취하는 것이다. 물에 비친 자연의 모습은 물을 통해 개괄과 함축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현실에서 관찰되는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나 자연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것에 육박하고자 하는 관찰과 표현 방법이다. 이는 자연을 단순한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원천이자 이상의 실체로 이해하는 동양적 사유와 자연관의 반영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곡지_50x25cm

 

 

이러한 작가의 사유와 감성은 화면의 형식에서도 확인되는 바이다. 일반적인 캔버스의 가로 세로 비율은 인간의 눈이 지니고 있는 시야의 폭을 수렴하기 위한 합리적인 비율을 바탕으로 만들어 졌다. 그것은 대개 황금비율이라 일컬어지는 1: 1,168의 비례를 견지하지만 작가는 1: 2의 비율로 변형된 화면을 취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1: 2의 비율은 바로 동양의 전통적인 화선지가 지니고 있는 화면의 비율이다. 서양의 캔버스가 이성적인 합리성을 전제로 육안에 포착되는 사물들을 효과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황금비율을 채택한 것이라면, 동양의 그것은 정서의 증폭과 여운의 확장을 위한 설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서양의 캔버스는 뚜렷한 초점을 중심으로 화면이 중앙으로 집중되지만, 동양의 화면은 좌우, 혹은 상하로 확산되며 증폭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화면에서 원근과 투시라는 공간 표현의 기본적인 설정조차 배제되고 대상들은 묘사나 재현이 아닌 개괄과 함축을 통해 표현되고 있음은 그의 지향이 이성적 합리성이 아닌 자연에 대한 그만의 감성적 사유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물론 작가의 작업을 일방적으로 동양회화의 그것으로 해석함은 억지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화면에 표출되고 있는 수많은 단서들은 그의 작업이 단순한 풍경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특정한 이해를 반영하는 독특한 사유와 감성, 정서 등을 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주지하듯이 자연은 모든 문명 활동의 시작일 뿐 아니라 모든 예술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연과의 관계에 있어 인간 중심의 서구문명의 자연관이 오늘날의 물질문명을 일궈내었다면, 동양의 자연관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통한 공생의 가치를 강조한다. 문명의 절정을 구가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비록 물질적 풍요를 제시해 주었지만, 물질 자체가 인간적인 가치와 인간적인 삶이 응당 지녀야 할 본연의 가치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을 더욱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웰빙, 혹은 힐링 등의 가치는 바로 물질문명의 절정에서 마주하게 된 인간적인 삶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회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질곡의 상황에서 새삼 주목되는 것은 바로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균형을 전제로 한 동양적 자연관이다. 작가의 작업이 비록 재료와 형식에서 풍경화의 양태를 지니고 있으나, 그 본질은 오히려 이러한 동양적 자연관을 바탕으로 한 이상향의 제시에 가깝다 할 것이다.

덧붙이자면 전통적인 산수화에는 대개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현실의 번잡스러움과 세속적인 가치에서 벗어나 청정한 자연의 이상세계에서 몸과 마음을 의탁하여 휴식과 안식을 얻게 하고자 함이다. 작가의 화면이 수묵화와 같이 매우 절제된 색채와 함축적인 형상 표현을 취하고 있으며, 명징한 자연의 표정을 물을 통해 피안의 이상적 공간으로 제시하고 인적조차 지워 버린 것은 바로 산수화로 대변되는 동양적 자연관의 발현에 다름 아닌 것이라 여겨지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작업을 단순한 서정의 물가 풍경 정도로 치부해 버린다면 이는 결코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주관적으로 해석되어진 이상향의 진지한 개진이자 제시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업은 고전적 장르구분의 한계를 또 다른 융합과 해석의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되고 기대되는 바이다. 작가의 분발과 다음 성취를 기꺼이 기대해 본다.

 

김상철(동덕여대 교수. 미술 평론)

 

 

반곡지의 봄_170x85cm

 

 

작업 노트 중에서-

 

※ 에세이

사월 어느 따사로운 봄날

겨우내 묵혀두었던 낚싯대와 카메라를 챙긴다.

현관 앞에 놓여진 낚싯대와 카메라를 본 아들은 아빠가 뭘하는지 궁금하다.

‘아빠, 어디가?’

‘응, 봄맞이 하러 가지!’ 봄맞이란 말의 뜻도 모르는 어린 아들은 ‘나도 갈래’ 라며 선 듯 아빠를 따라 나서려 한다.

나와 아들은 집근처 하빈에 있는 오래되고 조그마한 소류지에 도착한다.

아담한 저수지이지만 붕어가 잡힐만한 포인트를 물색하고 낚시채비를 펼친다.

드리워진 낚싯대 너머 펼쳐진 멋진 호숫가 반영을 바라보며 어린 아들은 낚시에 빠져들고 나는 스케치에 빠져든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우리 부자는 봄을 만끽한다.

 

※ 그림에 담겨있는 세가지 이야기

첫째는 봄이다. 봄은 따사로운 햇살로 겨우내 움츠린 몸과 마음을 감싸주고 위로해 준다. 누구나 봄이면 설레는 마음으로 자연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봄은 싱그러운 새싹들로 나를 봄 바람나게 하는 계절이다. 나는 봄을 탄다. 봄이 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갖 아름다운 꽃들에 매료되어 꽃구경을 나서겠지만 나는 꽃보다는 앙상한 나뭇가지에 돋아나는 새싹에 온전히 빠져있다. 길을 걷다가도 가로수에 돋아나는 새싹만 바라보게 되고, 먼 산을 바라보면 저마다의 연두색으로 피어나는 나무들의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고 있다. 봄은 이렇게 나의 마음을 온통 빼앗아 나뭇잎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게 한다.

둘째는 호숫가의 반영(反影)이다. 어릴 적 친구와 대나무를 잘라 낚싯줄을 메어서 강가에 나가 낚시를 하곤 했다. 그러나 커가면서 학업 때문에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그리고 교직 생활에선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낚시를 잊고 살았다, 그런 어느 날 대학 선배와 낚시를 같이 가게 되었고 낚시를 다시 시작했다. 일상의 피곤한 생활과 스트레스를 낚시로 풀어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낚시는 물고기가 아닌 그림의 소재를 낚게 만들어 버렸다. 잔잔한 물가의 반영된 수목들은 나로 하여금 그림으로 표현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지금의 “반영”은 시작되었다. (내 그림의 명제는 대부분 “00 소류지”이다. 물론 별도의 명제를 붙일 때도 있지만 “무명 소류지”, 혹은 “(지역명) 소류지”가 붙여진다. 소류지는 작은 연못을 의미하며 연못 보다 큰 곳은 저수지로 불리어 지고 저수지보다 큰 곳은 댐이다.)

경북 의성, 영천, 청도, 성주, 상주, 경남 밀양,,. 대구를 중심으로 근교에 있는 저수지는 낚시를 가기 위해서가 아닌 스케치를 위해 찾아 나섰다. 이름도 모르는 낯선 저수지에서 내가 그리고자하는 풍경을 찾아다닌 지 10여년은 족히 된 듯하다. 이제는 가끔 낚시를 하지만 낚시가 아닌 작품의 소재를 찾아서 아름다운 무명 소류지를 찾아다니고 있다.

셋째는 색이다. 캔버스에는 온통 연두(lemon yellow)에서 짙은 초록(olive green)까지의 수만가지 색들이 어우러져 있다. 그 중에서 연두는 봄에 빠질 수 없는 색이 아닐까 생각한다. 새싹이 돋아날 때의 나무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연두는 나에게 행복과 희망을 초록은 마음의 평안을 준다. 그리고 봄의 연둣빛은 풋풋한 어린아이의 마음을 닮은 듯, 때로는 어여쁜 여인의 순수함을 보는 듯하고, 초록의 절정으로 가기위한 시작이다. 봄의 초록은 여름의 초록과는 다르며 웃으며 손짓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인 듯(퍼머넌트 그린 라이트(permanent green light)색), 때로는 유혹하는 야릇한 여인의 향기인 듯하다. 그리고 안정과 성숙의 기운(퍼머넌트 그린(permanent green)에서 샙 그린(sap green)까지의 색)을 담고 있다.

 

 

복사꽃 필 무렵_200x100cm

 

 

소류지의 풍경_80x40cm

 

 

솔밭과 복사꽃_70x35cm

 

 

 

 

 
 

이경정

 

개인전 | 7회 | 2009. 일본 훗가이도 삿포르 NHK 갤러리 | 2009. 남해 바람흔적 미술관 | 2009. 대구 메트로 갤러리 | 2017. 대구 제이원 갤러리(초대전) | 2018. 대구 쿤스트 갤러리(초대전) | 2019. 대구 예뜨레온 갤러리(기획전) | 2020. 영천 청애 갤러리

 

단체전 | 한집 한그림 걸기 소품전, 대구유망작가 6인전, 기타 그룹전(MB EXHIBITION - 공아트 스페이스, 2012 외 다수)

 

現 대구구상작가회원, 달성미협, 대구시중등미술교육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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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00818-이경정 초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