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식 초대 展

 

 

잔칫날_72.7x60.6cm_Acrylic on canvas_2012

 

 

선 갤러리 1, 2, 3 전시장

 

2012. 5. 23(수) ▶ 2012. 6. 12(화)

Opening : 2012. 5. 23(수) PM 5:00 2F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84 | 02-734-0458

 

www.sungallery.com

 

 

잔칫날_72.7x60.6cm_Acrylic on canvas_2012

 

 

 선화랑은 2012년 5월 23일 ~ 6월 12일까지 한국 및 아시아의 대표적인 추상표현주의 작가로 인정받으며 미술교육자, 행정가, 국내외 미술자문위원, 문화외교관 등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는 이두식 교수님(홍익대학교)의 초대전시를 마련합니다.

 이두식교수님은1988년 선미술상을 수상하며 기념하는 전시를 시작으로 선화랑과 각별한 관계로 이어져 왔는데, 이번 전시는 오랜만에 갖는 공식적인 초대행사로서 80년도 후반에부터 일관해오고 있는 작품 "잔칫날(Festival)"의 근작 30여 점과 드로잉 10여 작품을 발표함과 동시에 고릴라라는 애칭이 붙을 만큼 우직해 보이는 면모를 가졌지만, 사춘기 소녀의 섬세하고 여린 감성을 지닌 이두식선생님의 작가적업적을 조명해보고 지난 예술적 삶의 모습을 들여다 보고자 기획되었습니다.

 

[미술계의 팔방미인]

이두식교수님은 대학생시절에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신상전 최고상, 제7회 문공부 신인예술전 장려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내 오다가 초현실주의 화풍 "생의 기원"으로 오리진 멤버로 활동하며 당시 한국미술계에 신선한 선풍을 불러왔습니다. 88년 선미술상 수상, 95년 당시 최연소로 한국 미술협회 회장으로 선출돼 큰 규모의 미술행사들을 성공리에 이끌고 미술문화 저변확대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같은 해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을 수훈 받은 영예를 안은바 있으며, 93년 뉴욕 제리 브뤼스터 화랑(JERRY BREWSTER Gallery) 전속작가로 5년간 활동하였습니다. 또한 2000년 이탈리아 로마의 지하철 플라미니오(Flamonio)역에 동양인으로 유일하게 그의 그림이 벽화로 제작되어 국위선양에 이바지 하였으며, 2005년 외교통상부 자문위원으로 활동, 2005년에는 한국 미술가로써는 처음으로 일본 교토 조형대학에서 명예 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홍익대학교 교수로써 후학을 양성하고 2007년부터 지금까지 부산비엔날레 운영위원장을 연임하는 등 미술계발전을 위한 바쁜 일정을 소화해 내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한국실업배구연맹 회장, 예술의 전당 이사, 서울메트로 미술자문위원장, 서울예고동창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두식선생님은 다재다능, 팔방미인 예술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술가를 꿈꾸었던 아버지의 영향]

경북 영주의 소백산 근처 작은 시골마을에서 사진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이두식선생님은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서울 경복궁으로 올라와 국전의 입상작품들을 보러 다녔습니다. 이두식선생님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미술가를 꿈꾸었지만, 부친의 반대로 일본에서 사진기술을 배워 경북영주에서 사진관을 운영하였고 셋째 아들이 미술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두식선생님이 미술가로 꼭 필요한 관찰력을 키울 수 있게 된 것 또한 어린 시절 사진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입니다. 그 예로 사진을 인화하기 전 필름 위에 연필로 명암을 주는 기술이 있었는데, 이두식선생님은 아버지의 이 기술을 어깨너머로 보고 따라 하며 자연스럽게 관찰력과 세밀한 소묘기술을 익히게 됩니다. 이후 1962년 서울예고 입학시험에서 석고상과 이젤을 처음 접하게 되었음에도 10: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습니다.

 

[1975-95오리진 멤버]

 한국현대미술의 발전을 돌이켜 볼 때 손꼽히는 한 그룹의 활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젊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시각을 선보이며, 도전적으로 활동을 했던 오리진(ORIGIN)그룹입니다. 63년 서승원, 이승조, 최명영 등 8명의 홍익대학교 출신의 들이 창립한 오리진은 60년대 해외 미술경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한국화단에선 잘 볼 수 없었던 추상표현, 옵 아트, 초현실주의 미학의 신선한 시각으로 주목 받았던 그룹입니다. 65년 홍익대학교 회화과 69년 동 대학원을 졸업한 이두식교수님은 75년부터 95년까지 ‘생의 기원’이라는 초현실적 경향의 작품으로 오리진 그룹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두식선생님의 또 다른 예술의 길이었고, 이두식선생님이 한국의 추상미술을 선두적인 역할을 하게 된 발판이 되었습니다.

 

 

잔칫날_72.7x60.6cm_Acrylic on canvas_2012

 

 

[생계를 위한 길 그리고 예술을 위한 길]

고도의 집중력과 순발력으로 속사포와 같이 쉴새 없이 쏟아내는 이두식선생님은 많은 작업량을 소화할 수 있는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쉽게 그림을 그려낸다는 의미보다 많은 그림을 단 시간에 그려봤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 근거를 뒷받침하고 있는 일화가 결혼 후7년 여간 생계를 위해 시작했었던 수출화(고릴라 로마역에 서다.-이두식) 그림작업입니다. 73년 당시 이두식선생님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하늘로 떠나 보내고, 큰아이의 병원비를 위해 돈을 벌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 했고, 이 그림들을 하루에 대여섯 점 그리면서 작업의 순발력과 집중력 그리고 빠른 구도를 잡는 방법이 자연스럽게 익혀졌다고 합니다. 결혼초기 낮에는 생계를 위한 그림을 그리면서도 새벽엔 어김없이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 고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였는데, 이때 그려진 그림이 초현실주의 경향이 돋보이는 작품 “생의 기원”입니다. 이 작품으로 이두식선생님은 기회가 될 때 마다 그룹초대전에 출품하였고, 76년에 좋은 기회를 맞아 명동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새벽을 깨우는 긍정]

이두식선생님의 작품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추상표현주의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이두식선생님이 작업에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이 그림을 그리기 전에의 태도, 기분, 느낌입니다. 언짢은 기분, 술을 마신 상태, 몸이 아프거나 불쾌하면 절대 붓을 들지 않는다는 철칙을 가지게 된 이유는 본인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자에게 좋은 기분과 영감을 전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긍정은 이두식선생님이 88년부터 시작했던 “잔칫날”을 그려내기 위해 지녀야 했던 기본적인 마음가짐 되었고, 현재에도 그는 모든 일을 끝내고 정신이 맑은 새벽에 꼭 명상을 한 후에 작업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또한 2011년부터 “잔칫날”에서 색을 과감하게 뺀 작품 “심상”은 맑고 담백해진 느낌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생전에 만점의 작품을 그린다.”는 목표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잔칫날 오방색의 향연]

1988년부터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천착하고 있는 잔칫날은 이두식선생님이 대담한 운필을 강조해 즉흥적인 감흥을 화면에 담아낸 대표작으로 음악적 요소와 춤을 추는 듯한 리듬감이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데, 화면 대부분을 청 적 황 백 흑의 화려한 오방색으로 장악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처럼 화려한 작품은 보는 사람들에게 신명과 흥을 북돋아주고 잠시나마 어려운 현실을 잊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두식선생님은 잔칫날이라는 작업을 우리나라 관혼상제문화에서 사용하는 화려하게 장식된 기물들의 원색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외세의 침략과 내전을 격은 고난의 민족이지만 잔치문화에서만큼 어느 나라보다도 화려한 풍습을 가졌다는 것을 보고 현대인의 위축된 마음을 즐거움과 기쁨으로 잠시나마 위로하기 위해 원색을 과감하게 쓰는 뜨거운 추상계열의 작업을 하였고 이것이 세계적 보편성에 다가가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작품 “잔칫날”은 희로애락이 함께하는 잔치에서 누군가는 꽹과리를 들고 누군가는 춤을 추며 노래하는 모습들과 그 환희를 2차원 평면에 환원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중 문화 외교관]

2002년 이후부터 눈에 띄는 이두식선생님의 활동은 중국에서의 대규모 초대전입니다. 2002 베이징 올림픽에 처음으로 자금성 내 미술관에 출품하면서 중국에 알려져 2003년 베이징 비엔날레에 참여한 그의 작품이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중국국립미술관에 소장되는 영예를 안으면서 중국에 본격적으로 이름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2008년에는 상하이 정부로부터 청포구 주가각의 위치한 아틀리에를 10년 동안 무상으로 쓸 수 있는 권한과 2009년 중국 랴오닝성 선양의 루쉰미술대학의 초청으로 루쉰미술관에서 개인으로 초대전과 명예교수로 임명 받았으며 같은 해 베이징 중앙미술학원 짜오리 교수의 추천으로 이루어진 금일미술관 초대전을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동양의 사상을 강조한 추상을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또한 2010년에 한중 미술교류 증진에 힘써온 이두식선생님은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외국인 전문가 영예상’ 수상을 하였고, 2011년 한.중 수교 19주년 기념 베이징 정부의 초청으로 중국베이징미술관에서 새롭게 변화된 작품 ‘심상’시리즈로 초대전을 갖는 쾌거와 중국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높인 성과를 쌓았습니다.

 

 

잔칫날_72.7x60.6cm_Acrylic on canvas_2012

 

 

이두식, 필선과 색채의 조화

서성록(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인간은 리듬과 하모니의 개념을 구분하는 유희능력을 지닌 유일한 존재이다.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거나, 구슬프게 또는 흥겹게 노래를 부르는 것은 다른 동물들이 지니지 못한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이랄 수 있다. 더욱이 그림을 그리거나 곡을 짓는 등 창작활동은 동물들에게선 발견할 수 없는 점들이다. 그와 같은 견해는 플라톤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데 플라톤에 의하면 신들이 슬픔을 안고 태어난 인간을 동정하여 그들이 고민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휴식을 취하도록 축제를 정하고 이런 축제를 통해 인간들 사이의 질서를 회복하였다고 했다.

이두식의 작품은 ‘축제’를 테마로 삼고 있다. 그의 생각이 플라톤의 견해와 일치하든 일치하지 않든 축제는 우리 인간에게 삶의 활력소이자 기쁨의 발원지이다. 이두식은 축제란 명제를 가지고 1980년대 중반 이후 무려 30년 가까이를 이 주제로 일관해오고 있다. 작품은 말 그대로 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팡파르가 울려 퍼지는가 하면 흥겨운 노래가 화면 가득히 퍼져나간다. 축제의 한마당이 한껏 펼쳐져 있다.

‘축제’는 고상한 사색의 장이라기보다는 젊은이들이 몸과 목청을 높여 끊임없이 움직이며 춤추고 노래하는 등 즐거움의 소음을 떠오르게 한다. 그렇기에 ‘축제’에는 음악과 춤, 그리고 놀이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일정한 질서 속에서 참여자들의 흥겨움을 고조시키는 것이 축제의 특색이다.

이두식의 그림에서도 그런 축제의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화면에는 원색의 물결이 연실 술렁인다. 가장 화려한 빨강과 유혹의 노랑, 청춘을 상징하는 녹색, 축제마당을 의미하는 황색, 잠시 휴식이나 머뭇거림을 연상시키는 파랑색들로 왁자지껄하다. 그 위에 흥을 더하는 것은 거침없는 운필의 질주인데 이것으로 그의 그림은 한층 팽창된 에너지 및 충동적인 선율을 표출하게 된다. 흘리고 뿌린 자락 이외에 그의 운필은 대부분 동양화의 모필을 통해 얻어진 것으로 그것은 일반적인 붓에서 나온 표정과는 사뭇 대조된다. 그의 필선들은 뭉툭한 것에서부터 가느다란 것, 힘을 주어 누른 것에서 스치듯 날렵한 것, 거친 갈필 효과 등등을 찾아볼 수 있다.

운필을 강조한다는 것은 그의 순간적인 감흥을 표현한다는 것을 뜻하며 그 같은 감흥에 의존할 만큼 탄탄한 조형기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순발력이 있고 호쾌한 필선 효과는 그의 그림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요소들이다. 간결한 인물소묘를 통해 쌓아온 속사(速寫)기법이 아크릴 작품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근래에는 탄력적인 선의 리듬에다 필묵의 조화까지 보태 한층 여유 있는 작업세계를 보이고 있다.

서두에서 ‘축제’의 의미를 간략히 언급했지만 작가의 작품의미를 심도 있게 파악하기 위한 단초를 제공하는 것은 아무래도 <축제>란 타이틀에서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화려한 원색과 활발한 붓질은 상대에게 삶의 즐거움을 되찾아주고자 하는 바람이 아닐까 어림짐작해본다. 놀이는 그저 놀자는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슬픈 인간에게 고민으로부터 벗어나 있도록 하는 데 더 중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축제나 놀이에는 “이렇다 할 선도 악도 포함하지 않는 그런 즐거움이 바로 파이디아(Paidia)이다”(플라톤)고 규정하였다. 축제는 교육적인 목적이나 피로회복과 같은 일정한 목적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유익하다. 즐거움 없는 인생을 생각할 수 없듯이 축제에서 얻는 즐거움은 자유로운 즐거움, 즉 자기목적적인 즐거움이다.

현실에서도 그런 자기목적적인 즐거움이 과연 가능할까? 현대인들은 뭔가 효력을 내야하고 목적이 있어야 하며 결과를 발생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데 이 때문에 즐거움은 그만큼 지연된다. 이런 점은 미술가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술가들은 미술이 더 순수해야 하고 더 자율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바람에 예술이 사람들과 유리되어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이두식의 ‘축제’는 예술의 자기목적적인 즐거움을 되찾으려는 기획의 일환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축제’란 행복과 몰입을 맛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현실로부터의 도망이 아니라 축제를 통해 삶을 긍정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그것은 환락과 욕정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통해 삶의 환희를 누리는 것을 말한다.

다시 그의 그림으로 돌아와 보자. 그의 작품의 중추적 요인은 물감이 아니라 놀이의 감각이다. 놀이는 그의 작품을 리드미컬하고 흥겨우며 유머러스하게 만든다. 화면은 붓질이 춤추고 색깔은 흥겹게 아우성치며 형태들은 이리저리 꼼지락거린다. 마치 마당에서 사람들이 모여 동네잔치를 벌이는 것을 보는 것 같다. 그들의 노래는 ‘원색’이, 춤은 ‘리드미컬한 운필’이, 흥겨움은 ‘물감의 겹침’과 ‘역동적인 구도’가 대신한다. 이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동인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것은 작가의 낙천적인 놀이감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것은 로마노 구아르디니가 말했듯이 “목적이 없으나 유의미하다.” 놀이가 아니라면 그의 작품은 순발력과 우연에 의한 작품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경우 그의 작품은 무의식의 투영이나 본능적인 리비도의 발현 정도로밖에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그가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다. 무의식의 발현이라기보다는 몸의 느낌과 고동을 운필과 색채로 실어내는 것에 더 가깝다. 삶의 즐거움이 화면에 울려 퍼지도록 경주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 리드미컬한 운필, 강렬한 색채, 즉흥적인 필치 등이 충천한 감정을 한층 북돋아주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자칫 감성의 논리에 충실 하다 보면 엉클어질 수도 있을 텐데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도 여러 요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손발을 맞추어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흥미롭기만 하다.

요한 호이징가(Johan Huizinga)가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가 문화보다 앞선다고 말했듯이 이두식의 작품에서 놀이는 상당히 주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유년시절의 유쾌한 놀이, 들풀을 가로지르며 뛰어다니던 시절, 행복한 시절로 우리를 인도해준다. 물이 흘러가듯이 그냥 내버려두기만 하면 우리 마음은 벌써 아련한 시절로 내달린다.

 

 

잔칫날_72.7x60.6cm_Acrylic on canvas_2012

 

 

 

 

■ 이두식 (1947~)

 

1965  서울예술고등학교 미술과 졸업 | 1969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 1979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졸업 | 2005  일본 교토 조형예술대학 명예박사(예술학)

 

개인전  | 70회

 

주요 전시  | 1974  제 1회 서울 비엔날레, 국립현대미술관 | 1983  한국 현대미술전 (동경 미술관 외 4개 도시 순회전) | 1984  카뉴(CAGNES) 국제회화제, Cagnes, 프랑스) | 1987  상파울로 비엔날레, 브라질 | 1988  한.중 현대회화전, 국립역사박물관, 대만 | 1995-98  한국현대미술순회전 (이탈리아, 독일, 헝가리, 터키, 폴란드, 스위스, 루마니아, 영국, 오스트리아, 프랑스, 벨기에, 케냐, 남아프리카공화국, 튀니지, 아일랜드) | 1996  피악(FIAC) 에펠브렌리(Eiffel branly Paris.), 파리, 프랑스 | 2000-01  아시아 평화미술전, 동경, 일본 | 2001  마니프(MANIF), 예술의 전당 | 2002  이두식, Okano Koji 2인전, 동경, 일본 | 2003  제1회 북경 비엔날레, 중국 | 2003  중국 항주 금채화랑 초대전, 金彩畵廊, 中國 杭州 | 2004  SFAF전, 예술의 전당 | 2005  KCAF, 예술의 전당 | 2005  쾰른(cologne) 아트페어, 독일, 쾰른 | 2006  문신미술상 수상작가 초대전, 문신미술관 | 2007  겔러리 아트도롬 초대 개인전, 독일, 포르세하임 | 2008  이두식의 소묘 일기(日記), 노화랑, 서울 | 2009  노신미술대학 초대 개인전 “동방추상 이두식 교수 초대전”, 중국, 심양 | 2009  이두식 이상벽 2인전, 김영섭 갤러리 | 2009  북경 금일미술관 “이두식 초대 개인전”, 중국, 북경 | 2009  북경 갤러리 아트사이드 “이두식 초대 개인전”, 중국, 북경 | 2010  이두식 초대 개인전, 갤러리 클럽 | 2010  상하이(SH) 상하이 컨템포러리아트페어, 상하이, 중국 | 2011  두바이국제아트페어, Madinat jumeirah, 두바이 | 2011  이두식 드로잉展, 부산 갤러리 폼 | 2011  중국미술관 “심상, 풍경, 축제-이두식 전”, 중국, 북경 | 2011  중.한 수교 19주년 국제미술교류전-장떠나.이두식, 중국국가화원미술관 북경 | 2011  이두식 초대전, 서울 아트파크 | 2011  이두식 개인전, 노화랑, 서울 | 2012  이두식 개인전, 정구찬 갤러리, 용인 외 다수

 

수상  | 1968  신상전 최고상 | 1972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 1988  선 미술상 | 1995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 (寶冠文化勳章) | 2001  MANIF (서울국제아트페어) 대상 | 2005  제4회 문신 미술상 | 2007  제4회 한국미술공로대상 | 2010  중국 요녕성 "외국인 전문가 영예상"

 

소장  | 국립현대미술관 | 연세 세브란스 빌딩, 서울 | 일은증권 빌딩, 서울 | 힐튼 호텔, 서울 | Jimmy Carter Foundation, USA | Olando City Hall, USA | Flaminio 지하철역 벽화(모자이크), Rome, Italy | 롯데 호텔, 서울 | 매리어트 호텔 | 힐튼 호텔 | 불가리아 국립미술관 | 중국 미술관, 북경 그외 다수

 

경력  | 제17대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역임 | 외교통상부 미술자문위원 | 한국 대학 배구연맹 회장 | 서울미술협회 이사장 | 홍익대학교 미술대 학장 역임

 

현재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 | 부산비엔날레 운영위원장 | 한국실업배구연맹 회장 | 예술의 전당 이사 | 서울메트로 미술자문위원장

 

 

 

vol.20120523-이두식 초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