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규 展

 

 

 

 

우연갤러리

 

2011. 4. 21(목) ▶ 2011. 4. 27(수)

대전광역시 중구대흥동187-2 | T.042-221-7185

 

 

 

 

 

 

 

 

 

 

 

 

박인규의 인상학적 삶, 그 모호한 지각의 기록

 

유현주(미술평론)

기원전 동굴 벽화의 들소 그림은 현대인에게 참으로 매혹적인 호기심으로 다가온다. 들소의 거칠게 내뱉는 숨결과 잔혹하리만큼 굳센 뿔과 발톱과 같은, 차마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길 생생한 ‘현실을 본다’는 것 때문일까? 그 들소 그림은 원시인의 눈과 코와 손끝의 전율로 전해진 모든 지각의 기록이다. 구석기시대 어느 화가의 감각이 ‘재현’한 기록이다.

 

첨단 자본주의 사회인, 현대는 화가의 눈을 사로잡을 그 어떤 사물도 동굴벽화의 들소처럼 직접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보드리야르가 말한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관계는 사물 속으로 숨어”버렸고, 빌딩숲 풍경 사이로 보이는 광고와 선전 문구들과, 마치 환등기에서 지나가는 영상과 같은 사물들의 판타스마고리아는 현대인의 뇌리에 ‘기호’의 흔적들로 스친다. 박인규에게 그러한 기호들은 무의식의 저장고에서 무작위로 결합되고 혹은 해체되면서, 마치 꿈속에 본 것 같은 불투명한 감각으로 채색되는 과정을 겪는다. 그 결과 만들어진 박인규의 공간은 들소의 그림과 같이 선명한 인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의 추상’으로 남은 심미적 사물의 공간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컨대 박인규 작품에서 실제 화분은 사실적 이미지와 추상된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주는데, 이는 마치 실재의 존재와 이미지의 차이를 통해 심미적 공간을 창출해야 할 화가의 게임을 보는 듯하다.

 

박인규의 그림은 그러므로 서사적 구조를 굳이 가지려 하지 않는다. 다만 시간의 흐름 안에서 쌓인 무의식의 두께만을 그림 안에 소유할 뿐이다. 피카소의 큐비즘적 공간은 보이지 않는 삶의 지각적 경험의 층이 교차하고 있는 것처럼, 박인규 그림의 공간에는 그 자신의 의식에 명멸했던 감정들 혹은 그의 진지한 ‘존재론적’ 질문들 속에서 멀고 가깝게 느꼈던 시공간적 경험의 인상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그 인상들은 원시인의 동굴 벽화의 아우라가 말해주는 눈에 박힐 듯한 현실과는 확연히 다른 ‘현실’이며, 박인규의 무의식 속에 조각된 시공간의 재현이고, 그의 인상에 채집된 모호한 지각의 기록들이다. 그렇게 기록된 사물은 색과 면의 언어로 박인규의 공간 위를 떠돈다. 그런데 최근 박인규의 공간에 새로운 형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어둡던 방 역시 밝은 톤의 공간으로 리모델링을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최근작들 역시 그가 지속적으로 해온 예술 속 공간과 사물, 존재의 질문 속에서 연장된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그러한 변화 욕구는 미래에 좀 더 과감하고 다양한 실험의 여지를 남긴다.

 

현실의 이미지가 걸러지고 표백된 심미적 공간 속에서 박인규는 몽상하길 좋아한다. 채색된 공간은 미니멀한 단색률의 풍경들을 그려내지만, 한편으로 그곳에서 울리는 깊고 얕은 음률들은 박인규에게 현실에 없는 활기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호한 공간을 조직하고 그곳에 그 자신만의 인상학적 표지를 남기는 즐거움은 그의 영혼을 마냥 자유롭게 만든다. 이것이 박인규가 이십년을 훌쩍 넘어서 그 자신만의 인상학적 삶의 기록을 우리에게 기꺼이 다시 보여주려는 이유일 것이다.

 

 
 

박인규

 

개인전 3회 | 현대미술의 새로운 시각전(대전) | 한국.몽골교류전(몽고) | DCAE전(대전현대미술특별전) | 대전현대미술의 새로운 비전(대전) | 대전미술 그림으로 말하다 전(대전시립미술관) | 한국회화의 단면전(제주) | 12회 아시아미술대전(부산문화회관) | 현대미술의 새로운물결전(대전) 등 단체전 다수 참가.

 

현재 | 한국미술협회 | 대전현대미술협회 회원

 

Email | in7185@hanmail.net

 

 
 

vol.20110421-박인규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