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호 展

 

2010 동강사진워크샵 베스트 포트폴리오 - 산책

 

 

산책_01_40x60cm_digital print_2010

 

 

갤러리 이룸

 

2011. 3. 4(금) ▶ 2011. 3. 16(수)

서울시 중구 충무로 2가 51-13 2F | 02-2263-0405

 

www.galleryillum.co.kr

 

 

산책_02_40x60cm_digital print_2009

 

 

동강사진워크샵은 강의를 통한 교육 강좌와 함께 참가자 개개인이 작품을 지참하여 전문가들과 의견을 나누고 조언을 듣는 포트폴리오 리뷰 과정을 개최해왔다. 특히 지난 2010년에는 포트폴리오 리뷰에 참가한 수강자들 중 두 명의 우수 포트폴리오를 선정하였고, 단기 멘토 과정을 거쳐 각각의 개인 전시를 지원하기로 하였다.

2010년 포트폴리오 리뷰에 참가한 사진전공 학생들과 아마츄어 사진가들은 리뷰어로 참석한 사진가 정주하, 이창수, 경성대학교 이재구 교수, 박건희문화재단 박영미 학예실장으로부터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조언을 받았고, 리뷰어들은 토의를 통해 정윤호와 최영환의 작품을 최종 우수 포트폴리오로 선정하였다.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정윤호는 <산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지난 2년 동안 사진 작업을 해왔다. 길을 거닐며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잡아낸 그의 작품들에는 서로 다른 성격의 피사체들이 빚어내는 비범한 조화가 존재한다. 인간과 사물, 환경이 만들어낸 이 미묘한 긴장감은 3차원 공간에 대한 작가의 직관에서 비롯되고 있다. 소아과 전문의 최영환은 카메라를 통해 죽음이라는 주제에 접근하였다. 그의 작품 <레퀴엠>에 담겨있는 대상들은 어두운 흑백의 톤 속에서 각기 다른 죽음의 향기를 머금고 있다. 그러면서도 각각의 작품들이 감각적인 연결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의사라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루는 직업이 작가에게 안겨준 숙명과도 같은 사유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진 문화의 활성화를 지원하고, 미래의 사진가에게 경험의 폭을 넓혀주기 위하여 기획된 동강사진워크샵을 통해 시작하는 두 사진가의 첫 발걸음은 우리 사진 문화 속에서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순간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기획 : 박영미 (동강사진워크샵 책임위원)

 

 

 

산책_03_40x60cm_digital print_2009

 

 

작가 노트

그림을 그리는 나는 몇 시간 또는 몇 일의 시간을 축적해서 한 장의 그림을 완성 한다.

그러나 사진은 호흡보다 얕은 일순간에  나의 감성과 지성을 응축해서 쏟아내는 쾌감이 있다.

다소 성격이 급한 나는 이러한 사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 작업은

너무나 익숙한 나의 동네라는 곳에서 발터벤야민이 언급한 만보객(flaneur)이 되어 산책하듯 천천히

걸으며 의식하고 바라봤던 피사체와 흘러가듯 지나가는 풍경사이의 틈새에 대한 작업이다.

 

그곳에 존재 하지만 사진가의 의도에 의해 버려진 장면, 혹은 의식밖으로 스쳐

지나간 풍경에 대한 재발견이며

정지와 행동사이, 존재와 변화사이의 관찰이다.

무심한 풍경들이 짧은 순간 보여주는 미묘한 불안정함과  피사체간의 어긋난

하모니를 찾는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다.

 

 

산책_04_40x60cm_digital print_2009

 

 

정윤호의 작업 <산책>에 대하여.

정주하 (사진가, 백제예술대학 사진과 교수)

 

인류가 무엇인가를 보고, 기록하려는 욕망을 시도한 것은 매우 오래된 듯하다. 우리가 구석기 시대의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알고 있다면, ‘시선의 의미’와 ‘기록의 의미’는 적어도 이만 년쯤은 된 인류의 보편적인 욕구라는 것을 이해할 터이다. 그러나 누구나가 ‘단지 - 본’ 것을 ‘모두 - 기록’하지는 않는다. 본 것을 기록하는 행위는, 보았다고 해서 곧 기억하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필요와 충분’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그 필요의 조건에는 대상에 대한 스스로의 관심과 전달의 의미가 있을 것이며, 충분의 조건에는 기록하는 방식/기술이 숨어 있을 터이다.

또한, 기록이 꼭 기억과 동일할 수는 없다. 기억이, 사라진 과거와 유일한 화해의 실낱같은 통로라 하더라도, 기억의 한계가 때로는 기쁨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기억과 기록은 어쩌면 동전의 양면처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데, 이를 증명하자면, 다시 ‘오캄의 면도날’처럼 들이대는 증거가 베이는 근거일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기록(記錄: 외어서 베끼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기록이 가지는 ‘방식의 다양성’은 다시 그것을 읽어낼 때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해주기에 그렇다. 기억이란 ‘나와 나’ 사이만의 명징한 관계지만, 기록은 그것이 물화(物化) 되면서 얻게 되는 사회성으로 말미암아 ‘해석’을 낳는다.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를 쓴 빌렘 후루서(Villem Flusser)는 인류의 기록 문화를 두 개의 분기점으로 구분하였다. 기원전 1,500경부터 시작된 선형의 문자 문화(문자의 시대)와 19세기 초반에 발명된 기술적 그림 문화(사진의 시대)가 그것이다. 우리가 증인이기도 한 이 기술적 그림은 기억과 기록의 구분을 매우 분명하게 구획 짓는다. 사진으로 인해, 과거를 향한 흐트러질 수 있는 기억의 모호함이 이제 기록의 명징함으로 대체되어 그 절대의 관계가 분명해 진 것이다. 문자와 그림이 오랫동안 기억을 대신하려 애써왔으나 사진이 발명된 후 일거에 그 지위를 박탈해 버렸다. 이것이 사진이다. 이러한 사진의 기록성이 감성의 옷을 입고 새로운 언술표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은 아마도 만 레이에 의해 <재 - 발견>된 외젠 아제의 사진에서부터일 것이다. 초현실주의 옷을 입고 새롭게 이해/해석되기 시작한 그의 사진은 작가의 의도와 전혀 무관하게 해석만으로 의미를 얻었다. 만 레이가, 1926년 그의 사진을 초현실주의 혁명(La Revolution Surrealiste)잡지에 네 점을 싣도록 주선하였을 때 느낀 감정은 사실이 ‘그 사실’을 넘어설 수 있다는 강령과 맞닿아 있었을 것이다. 텅 빈 거리의 이상한 모습과 그 사이에 공기/바람처럼 흩뿌려진 행인의 흔적들, 그리고 막 들어서기 시작한 도심의 아케이드 안에 멀쩡하니 서 있는 모자 쓴 마네킹의 모습은 말 그대로 <초 - 현실>적이었을 것이다. 비록 아제가 사라져가는 건물을 더 잘 보여주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뜸한 이른 아침을 촬영시간으로 선택하였기에 만들어진 현상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긴 노출시간은 모든 움직이는 사물을 공기 중에 사라지게 하였으니 이 어찌 초현실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말이다.

정윤호가 보여준 사진들을 꼼꼼히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든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그의 사진이 방법적으로는 더 이상 충격적이거나, 이상할 것이 없는 보편적 형식이면서도 내용은 매우 비일상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그럼에도 그의 작업이 기억을 기록하면서 만들어졌을 터, 그의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궁금해서이다.

 

 

산책_05_40x60cm_digital print_2009

 

 

사진이 기억과 기록의 사이에서 피어나는 <구름/이미지>이라면, 그의 기억은 적어도 자신이 보여주는 사진의 한 귀퉁이를 닮아있어야 할 터이다. 그의 작업 방식은 외젠 아제와 로버트 프랭크 그리고 랄프 깁슨의 교착 꼭짓점에 턱 하니 있다. 그가 학습을 통해 이들의 사진을 몸에 체득했는지 아닌지는 의미가 없다. 그의 사진이 이미 그렇게 자신을 확성(擴聲)하고 있기에 그렇다. 사진에는 형식의 기술이 있다. 이는 마치 말하는 어법과 같아 빠롤(parole)의 역할과 닮아있다. 카메라의 포맷선택, 그 포맷과 프레임, 나아가 렌즈의 선택 모두가 다 여기에 근거한다. 한 번, 두 번 비슷한 작업을 이어나가면서 차츰 '의식의 시선'은 자신이 선택한 도구를 닮아가게 마련이다. 너무 넓지 않은 광각렌즈와 사물의 크기를 달리해서 배치하는 방식과 정작 드러내고자 하는 사물을 임의로 숨기는 혹은 작게 배치하는 방식 등은 위에 열거한 작가들이 발명해낸 사진적 리터러시(literacy)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사진을 보면서 이러한 작가들이 생각났다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다. 그래서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진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아마도 그 역시 잘 알고 있을 이러한 방식의 문제를 다시금 재사용하면서까지, 그러니까 ‘결과적 유행에 뒤처진 방식’을 안고서라도 반드시 이렇게 표현하고자 하는 이유로서의 당위가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그것도 이처럼 진지하게 말이다. 아마도 그것은 자신의 기억에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나는 그의 과거를 모른다. 다만, 그의 작업을 통해 예견할 뿐이다.

적어도 작가로서 정윤호는 깔끔하고 반듯하게 보인다. 화면에 군더더기가 없다. 정리하기 좋아하며 자신이 선택한 화면구성에 매우 충실하다. 이제 시작하는 작가라면 매우 훌륭한 태도다. 세상을 파인더로 절단/잠식하여 의식의 틀과 교합(交合)하는 일처럼 신 나는 것은 없다. 또 그 결과가 만족스러울 때는 더욱더 그렇다. 지금 정윤호처럼! 그가 충실히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중심이 아니다. 주변을 중심 -화(化)하는 역성(逆成)의 시선이다. 셔터를 누르기까지 긴 시간을 요구하지는 않으나 긴 호흡의 시선은 필요할 터이다. 이미 눈으로 장면을 확인했을 것이고, 그것을 다시 파인더로 옮기면서 귀퉁이를 절단해 나가는 솜씨는 그래서 절묘하기까지 하다. 문득 어디선가 본 듯한 화면이라 하더라도 상관이 없다. 그러한 장면과 장면 사이에는 다시 자신만의 고유한 시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귀퉁이에 그의 기억이 배치되어 있을 것이다. 기록은 기억을 배반하지 않으나, 기억은 기록을 종종 배반하고 만다. 본 듯한 것과 보아야 하는 것 사이에서 배회/고민한 흔적이 여러 사진에서 보인다. 하지만, 거의 모든 중요 사물을 중앙에 배치하는 그의 습속(習俗)은 고민과 갈등을 흔쾌하게 돌파하는 증명일 수도 있다. 대부분이 정면이며, 대부분의 해석을 관람자(觀覽者)에게 맡기는 방식은 저돌적이기도 하다. 때론 유머러스하기도 하고.

랄프 깁슨이 메리 앤런 마크와 함께 로버트 프랭크를 찾아가 배움을 구하였을 때, 그가 얻은 것은 ‘손’이라는 쉬운 주제였다. 아마도 로버트 프랭크 자신이 그렇게 학습을 했던 것처럼 그는 찾아온 후학에게도 하나의 소재를 주제화시켜 던져주고는 오로지 화면으로 그 대상만 볼 것을 주문했다. 그것이 발화되어 랄프 깁슨은 1970년대를 관통하는 새로운 사진 조형언어를 만들어 내었다. 물론 호/불호에 따라 평가는 달라지겠으나, 정확하게 사물의 전부를 다 보여주지 않고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분명하다. 사진이 갖는 명확한 재현성을 여전히 한 손에 쥐고도 다른 한 손으로는 감성의 표현을 가능하게 한 것 말이다. 이러한 방식이 확산되어 사진의 기록성에 변화가 온 것이다. 지금 정윤호가 보여주는 사진의 방식에서도 같은 어법이 읽힌다. 그는 다 보여준다. 하지만, 정확하게 보여주지는/서술하지는 않는다.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에 대한 표식은 사진 어디에도 없다. 많지 않은 사물들을 얽고 매어 이야기를 구성하지만, 화면 안의 사물들 사이에도, 또 이어지는 사진과 사진의 사이에서도 연관되는 서술은 없다. 그저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이 보는 사람의 개별 경험에 따라 이해되는 지점은 분명히 있다. 감성의 서술화(敍述化)다. 하여, 어떤 의미로 이해하든 그것이 보편성을 가지지는 않으나, 분명 그의 사진을 통해 어떤 생각이 연결되는 것은 확실하다. 결국 바라본 것의 경계는 없고 이어지는 불분명한 사연들이 서로 다투면서 스스로를 드러낸다. 그러니까 그의 사진은 뭘 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평이한 삶의 평이한 한 단면이어서 더 특별해지는 순간이다. 그의 하루가 그러하리라.

 

 

 

 

 

vol.20110304-정윤호 展